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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습니다.드디어...
여러가지를 적으려 했지만, 키보드를 만진순간 잊어버리고말았습니다.
아무튼 마지막까지 읽어준분들께 감사를.
레스를 주신 모든분들께도 감사를.
글도 못쓰는 문외한의 시시껄렁한 이야기에 어울리게해서 죄송했습니다.
그럼, 맥주라도 한잔 해야겠습니다...ノツ
777
모든 레스를 살펴봤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신분들,레스까지 덧붙여주신분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마토메사이트에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개인적으론 업로드하지않아주셨으면한다고생각합니다.
제가 계속 적어나간 글을, 리얼타임으로 읽어주신분이계시다는것,
이걸로도 충분히 만족하고있으니깐말이죠.
제 치졸한 문장이,이야기를 끝맺었음에도 어딘가에 남아, 보여진다는게
솔직히 부끄럽기만 합니다.
직접 재독해봐도 무척...이라고 하는정도는 아니지만 부끄러움을 견딜수없는 내용입니다.
그래도 업로드를 하시겠다고 하신다면, 기간을 한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한한 짧은기간으로 말이죠.
그 뒤엔 되도록이면 재빨리 잊혀지고싶습니다.
어느분께서 처음으로 업로드하여 지금까지 약 2개월이 경과했다고 적어주셨는데,
제게는 좀더 긴 기간으로만 느껴집니다.
첫 스레부터 레스를 적어주신분이 생각나네요.
스레를 이어가는 도중엔갑자기 레스가 늘어나, 그때부턴 그분이 어느분인지를 잊어버리고 말았지만요.
마지막까지 읽어주셨으려나요?
매일밤 올린것도아니고,그렇게 많은 분량도아니지만,
이 글을 2개월간 적어나가는게 제게있어서는 제법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귀중한 체험이 되었다고 믿고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여러분, 감사했습니다.
_, ._
( ゚ Д゚)
( つ旦O
と_)_)
_, ._
( ゚ Д゚) 콰당
( つ O. __
と_)_) (__()、;.o:。
゚*・:.。
.,r‐--,,,_、
.゙l゙'i、 `゙''-,,,,,,,,,,,,,,,,,_
: ゙l `'i、.,r‐-、,,`'-,、 `''ー、_
゙l ,/゛ `゙''''ミッ、 ゙゙'''-,、 낚시였냐 개새끼야!
У `!ヽ、 ._,,i、 ,,,,,、
/ ゙r゙l, / ‘i、 { ゙i、
| ゙'i゙l ./ |, ゙l、 ゙l
| _,,,,_ .゙'},. | ,/ ゚i、 ゙l ゙l、
゙l ,r'"` `゙゙''',゙',lri、,,/ .゙l ゙l ヽ
│ .| .彳 ゚|″ | .| │
│ .ヽ_ _,,-° `i、 .| .,,゙l, .゙ケ'=ッ、
゙l, ,,,,,,、  ̄ ̄ .゙l,-'シ'',!.゙l ,/゜ ゙'i、 .}i、`.゙'i、
`'| `'i、 ,,,rン・'゙,,,-'i| .| .l、,,」 ゙= |
.゙ヽ, .゙!, i″ ゙''i, .l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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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 ./ .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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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ー¬''" ヽ-, |、
" .l゙
어설트 &집배원의 제멋대로릴레이편이 완결까지....
이 스레보면서 스토커(잠입자)란 영화도보고 아무튼 여러가지로 기억에남을듯한 스레네요,
아무튼 결말이 이런걸가지고 내게 돌을던지지 마시오!입니다.
많은 분들이 1이 참 글을 잘 쓴걸로 알고계시겠지만,
1이 글은 못쓴건아닙니다. 하지만 1보단 역자들이 잘한거에요.
다들 4편까진 그렇다고 느끼셨겠지만 5~완결편부턴 제 언어력의 한계가...보이는;; 처참하고 참혹한 인증글이지요... 후...
이런 간단한 후일담외에는 원스레식 마토메에서 확인할수밖에 없는데
그 긴 스레들의 레스들을 전부 읽는건 불가능한지라 한편정도를 대충 훑어보자,
[감수성은 풍부하나 그에비해 표현력은 좋지않다.] 라는 평가를 시작으로해
아마존에 서적화 된 후부터는 욕설이 장난이아니네요.
[팔리는거면 다 좋은거냐.] 라는 말 정도는 양반...
그러니까 위에 적은것처럼 폼은 다잡고 서적화한다고하니 냉큼 동의해서 책에 후일담까지 내필했다 이거죠
이상, 후일담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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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호텔에 도착하여 프론트에 이름을 밝히자.
종업원이 왠지 쓸데없이 멋들어지게만든, 룸넘버가 적힌 금속으로된키를 건넸다.
그러면서 종업원이 먼저 객실에서 기다려줬으면 한다는듯하나
프론트의 번쩍이는 검은 대리석의 바닥을 가로질러,입구가 내다보이는 로비의 소파에 걸터앉았다.
한시간정도를 기다렸을때쯤.
프론트에 다가가는 눈익은 인영이보인다.
그 인영이 양손에 든 짐은 생각했던것보단 적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에는 은색의 머리핀이, 뒷머리를 묶어두고있는게보였다.
나는 재빨리 일어서서 엘리베이터 홀에 향하는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내가 뒤에있다는걸 전혀 눈치채지못하고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여 기내에 오르자 나는 그녀의 시계를 피해 등뒤로 돌아섰다.
목적층의 버튼을 누르는 그녀, 넓은 엘리베이터의 안은, 우리들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어서와」라고 말했다.
침묵이 자리한 이곳에서 갑자기 말을꺼낸 탓인지,
반사적으로 허둥대며 정면에있던 문에 부딪치는 그녀.
그뒤 그녀가 뱅글하고 뒤돌았을때,우리들은 눈이 맞았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활짝 피어지기 시작하였고,
이윽고는 눈물을 머금으며 표정을 바꾸었다.
울먹이며 내 목에 팔을 감는 공주님.
그녀가 눈물을 머금은 이유는, 아마 재회로인한 기쁨때문인거겠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붙들고서 그간의 인사대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카나가... 돌아오지않아요.] 라며.
359
호텔의 방은 넓었기에 우리들은 그 넓음을 주체할수가없었다.
지나치게사치스런 가구들과, 크디큰 침대. 그 모든게, 우리에겐 어울리지않았다.
넓은방의 커텐을 열어젖히자 한장의 큰 유리가 있었고.
그 유리엔 시부야의 야경이 내려다보였다.
시부야의 거리는 한낮과도 같이 밝았으며, 그 빛이 방의 벽에 반사되어
출입문 근처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고있다.
불을 끈채인 방의 모퉁이에 몸을 기댄채로 그 어둠에 자리하는 그녀.
창밖을 보며 나는 그 아름다운 사자와같은 여자를 떠올려냈다.
날씬하게뻗어 탄력있어보이는 몸과, 한눈에봐도 날렵해보였다는게 기억난다.
하지만 이젠 어떤 목소리였는지는 기억나지않는다.
한동안 울먹이던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단지 나를 붙들어안은채 떨고있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에 메달린 은색의 머리핀.
그걸 자세히보자 싸구려로된 쇠붙이로, 끈 위에는 인도화에 등장하는 신이 조각화처럼 세겨져있다.
이건 분명, 델리근처에서 가져온, 그녀가 말하는 [귀여운것] 이겠지.
어떻게 그녀의 머리를 모아주고있지만, 머리핀이라고 부르기엔 미덥지않기만하다.
그녀가 침대에누워 잠결에 뒤척이는것만으로도 구부러지며, 부러질것만같다.
내가 모르는 인도의 거리.
친구가 건네준 사진에담긴 숫자에따라, 그녀는 움직이고있는것일까?
칠흑과도같은 델리의 밤,
카나가 돌아오지않는다는건, 그 델리의 어둠에 먹혀버린건 아닐까?
360
나는 아무것도 묻지않았다.
한동안있자 그녀는 드디어,
[다녀왔어요.] 라며 입을 열었다.
내게[정말...보고싶었어요.] 라고도 말해주었다.
그뒤 그녀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들쑤신뒤,
보기좋게 포장된 만년필이라던가가 들어있을법한 직사각형으로된 상자와,
여러 종류의 담배들이 섞여담긴 상자도 꺼내어, 기념품이라고 말하며 내게 건네주었다.
크래커나 초콜렛,사탕같은, 말하자면 귀여운 패키지들로 밖엔보이지않아,
외견만보고선 담배라곤 생각되지않는다.
그녀는, [직사각형으로된 상자는, 아직 열지않아줬으면 해요.] 라고 말했다.
그러곤 [열어야 할때가 올테니깐요.] 라고도 말했다.
나는 솔직히 [알았어.] 라고 고개를 끄덕인뒤, 그녀의 손을 잡는다.
그뒤 침대에 가자. 라고 말했다.
깊은밤이 다가오자 비가내리기시작했다.
우리들은 침대를 빠져나와 거울너머,
비에 흐릿해져만가는 시부야의 거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때 였으려나, 그녀가 이상한걸 말해왔다.
[당신, 영화라던가 좋아하나요?]
[음, 평범하게 좋아하는정도려나?]
[그럼 스토커라는 무서운영화, 본적있나요?]
361
난데없이 왜 묻는걸까? 하고 의아해했다.
그 타이틀로 연상되는건 평범한 범죄라고 생각되는 그것뿐인데
그녀가 영화의포스터에 나온 사진을 묘사하기 시작했을때,그게 무언지 알았다.
타르코프스키의 그것이다. 나는 수긍할뿐인,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미스테리한 영화네.] 라고만 말했다.
그녀가 그 영화에대해 뭔갈 말하고싶은듯했고,
그 내용이 영화광들의 잘난체하듯하는 감상 같은게 아니란건 짐작된다.
그녀는 작은 손가락으로 유리위를 스윽거리며 무슨 그림이라던갈 그리듯 미끄러지게 놀린뒤,
[비.]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 영화 속에는, 물이 한가득 사용되었다고 말하는그녀의 손가락엔 물방울이 있었다.
그녀는 유리 너머를 손끝으로 톡톡치며, 물방울을 흘러떨어뜨리고있었다.
426
그녀는 그 영화를 어디서 관람했던걸까.
이젠 오래되었기도하고, 컬트하기도하니,
어찌 생각해봐도 그녀가 즐거이 즐길만한, 훈훈하고 좋은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한두번 관람한건 아닌듯 싶었다.
그 기억은 나보다도 선명했다. 그녀의 이야기로 기억나는 신도 있을 정도다.
[어디서 본거야?] 라며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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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기쁜듯한 높은톤의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퍼진다.
조금지나자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건 분명,
오른손에 늘어뜨리고있던 편의점봉투가 내는 소리겠지.
레드핫 칠리페퍼스의 ScarTissue,
곡이 끝나기전 수십초간 애절한 기타의소리가 계단의 발소리와 겹쳐진다.
언젠가 MTV에서 본, 그 영상을 떠올려냈다.
황야를 질주하는 너덜거리는 오픈카와 넥이 끊긴 기타.
연주자는 연주가 끝자나, 아무런 망설임도없이.
기타를 주행중인 차에서 뒷쪽으로,
수면에 흘리듯이 버리고만다.
쓸데없이 멋진 마무리다.
그걸본 나는 나라도 무언가의,
매사의 마무리에 있어선 그정도로 멋있게 정할수 있을거라며, 그럴수있을거라며 믿고있었다.
[다녀왔어요.]
하지만 어떨까.
그녀와의, 최후의 순간에 나는, 제대로 설수는 있으려나?
[제대로 자고있던거 맞죠?]
시원스레 '안녕' 이라고 말할수는 있을까?
[저기저기, 이것좀 봐요]
그런건 분명히... 할수없다.
있을수없다.
[귤과 사과를 잔뜩 사왔어요, 엄청 쌌다구요?]
그녀의 디스켓이, 언젠가 그녀를 삼켜버리진 않을까하며,
나는 역시나 불안하여 어쩔수가없다.
그렇기에 병원에서 들었던 그녀의 작은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주술의 주문처럼 읊어졌지만,
그 주문은 아무런 효과없이 머리속을 내돌기만했다.
[아, 과도랑 접시를 가져올게요]
hiroshima.tistory.
이제, 나도 머릿속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될것같다.
지나친 생각일테다.
감기탓에 마음이 약해지고있는걸거야.
아마, 그럴거야.
174
놀랄정도로 숙달된 손놀림으로 그녀는 사과껍질을 벗겼다.
왼손에 있는 사과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얇게, 붉은껍질을 벗겨져간다.
그녀는 왼손에서 사과를 놓지않고 네등분으로 나눴다. 나이프로.
씨로 막힐법한 부분까지 간단히 싹둑하고 잘라냈다.
조금 큰, 네등분된 한조각이 내 입언저리에 옮겨졌다.
사과는 차가웠기에 상쾌감이 입안에 퍼진다.
맛은 별로 느껴지지않았지만, 침샘관이 한가득 열리며 산미가 있다는걸 알려줬다.
그새 그녀도 한조각을 입에물고서 오물거리고있었다.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를 내는채로[맛있어요?] 라고묻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졸음이 몰려온다.
그녀가 곁에있으면 안심되기에 졸음이 몰려온다.
내가 눈을감고 호흡을 낮게쉬며,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자려고 했을때.
그녀는 평소와달리 상냥한 목소리로, 내게 이리 말했다.
[내일부턴 잠깐동안 만나지 못할지도몰라요.
짧은 시일내로 , 금방 돌아올게요.
일본에 돌아오면, 제일먼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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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안에서 눈을떴을때.
그녀는 내 곁에 없었다.
벽장속에도,욕실에도.
그녀가 여기에 있었던 흔적조차도 사라져있었다.
화장대 위에 널부러져있던 화장품도
침대 주변에있던 봉투더미도,
죄다 갑작스레 이 방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전원이켜져 대기화면이 된채인 노트북과
사이드테이블에있던 한장의메모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휘청이며 화장실을 들린뒤
냉장고에서 페리에를 꺼내어 벌컥이며 마셨다.
급히 마신탓에 코로 역류하여, 기침이 멈추질않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잠에 들었다.
얕은잠을 잔 뒤,
해가진뒤로 열이 몸속을 다시 부글부글 끓였기에 일어났다.
마치 몸이 불탈정도로 뜨거웠다.
몸이 몹시 나른하고, 철과같이 무거웠다.
마치 관절이 삐걱대는것만 같았다.
힘겹게 침대옆 취침등의 스위치에손을뻗어 어떻게 불을 킬수있었다.
그리고 테이블위에 남겨진 메모에 눈을 돌리자 메모엔 달필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아직 열이 나는걸까요?
조금 걱정이에요.
그러니 곰인형을 두고갈게요.
곰인형이 당신을 지켜줄거에요.
이 곰인형은 내 목숨보다 소중하니까,
그러니까.. 다시 내게 전화해서,
꼭 내게 돌려주세요.
p.s
당신의 소중한 친구분께 전화해두었어요.
시간이늦기전엔 데리러와줄거에요.
그때까진 침대에서 나오면 안돼요.
알았죠? 알겠죠?
- 케이코
620
공주님의 천진난만한 몸짓이나.
얇고색기있는 목소리나.
아름다운 용모에 속아넘어가 중요한점을 잊고있었다.
똑똑한 여자다,공주님은.
그러자 객실의 전화가울리며 프론트에서 손님이 왔다며 알려주었다.
오후10시를 지났을무렵이다.
방으로 친구가 들어왔을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콧물을 늘어뜨리고있었다.
미처 닦아낼 기력도없었다.
[사람 귀찮게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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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공주님이 속옷 차림으로 잠이 들고 한참 뒤 메일이 왔다.
보낸 사람은 당연히 오타쿠 친구.
PC로 메일을 보낼테니 확인해보란 내용이었다.
PC를 켜서 파일이 첨부된 메일을 확인했다.
[지금까진 확신할 수가 없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파일은 정답이었던 것 같아.
지금까지 별 의미없이 나열해놓기만 하던 퍼즐 조각들을
정확히 원래 자리에 끼어 맞출 수 있을지도 몰라.
헌데 우선 확인해두고 싶은 게 있어.
무슨 방법을 쓰든간에 그 여자 본명을 알 수 없을까?
하기 싫겠지만 우선 그 여자 소지품에서 면허증같은 걸 확인해봐.
이 자료 대로라면 그녀의 본명은 사토 케이코. 나이는 19살
국내 면허증을 취득한 상태야.
그렇게 젊은데도 아시아 몇개국과 유럽 몇개국을 여행한 경험이 있어.
광동어를 쓸 줄 알아.
해외 은행에 계좌를 뒀는데 거액의 예금을 맡긴 상태야.
좀 더 상세한 설명은 우선 그녀의 면허증을 확인하고 나서 할께.
물론 여기서 그만 둬도 돼. 이건 네가 선택할 문제야.
이 앞으로 나가는 건 그녀의 프라이버시에 접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어느쪽이든 결정을 내린 다음 연락 줘.
기다리고 있을께.]
내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닌데.
그녀가 가진 플로피 디스켓의 내용만 알면 그만이었는데.
나는 친구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걸로 충분해. 고맙다. 나는 여기서 그만둘래.]
메일을 보내고 나서 나는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나는 분명 그녀의 플로피 디스켓을 훔쳐보았다.
그리고 그걸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결정내린 채 끝내려고 했다.
그녀는 뭔가 좋지 않은 것에 연관된 듯 했기에...
그러니까 내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망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이상 나아가는 건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들여다보는 행위다.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나는 결국 그녀의 핸드백을 뒤졌다.
지갑에서 몇장의 신용 카드와 면허증을 발견했다.
이름을 확인해보니 사토 케이코라고 적혀 있었다.
생년 월일로 19살이란 것도 확인했다.
나는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녀의 이름은 사토 케이코, 면허증을 확인했다.
파일을 송신해줘. 그리고 설명도 부탁해.]
346
친구는 내 메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엄청 빠른 속도로 답장이 돌아왔다.
[갑작스런 이야기라 믿기 힘들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 면허증은 가짜야, 즉, 위조 면호증.
그 여자는 면허를 취득하고 1년 뒤에 면허 정지를 먹었어.
면허는 다시 재발급 받질 않았어.
왜 그런지 조사하기 위해서 조금 위험한 짓을 했다.
그런 류의 뒷정보를 다루는 녀석하고 거래를 좀 했지.
돈이 들긴 했지만, 돈 내놓으란 소리는 안할테니까 안심해라.
하지만 에어조던은 반드시 받아낼 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그 여자의 이름 빼고 남은 정보는 모두 가짜야. 19살이란 것도 거짓말.
아마 면허증에 적힌 정보들은 어떤 패스워드라고 생각해.
그래서 이름 이외의 정보는 누군가가 계속해서 바꾸고 있는 것 같아.
입 다물고 있어서 미안해.
하지만 네가 결국 그녀의 지갑을 뒤질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네가 포기해주길 바랬어.
그만둔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는 안심했는데...
결국 너는 나아가는 걸 선택했지. 실망이다.]
면허증도 가짜였구나, 그건 정말 놀랐다.
347
2번째 메일
[우선 GIF 파일에 대한 것.
사진 속 남자애가 가진 물총에 주목해봐.
등록 상표가 찍혀 있어야 되는 곳에 이상한 숫자가 적혀 있지.
보면 알겠지만, 이전 사진 파일에 비해서 손질이 잘되있어.
언뜻 보면 눈치챌 수 없는 수준으로. 아마 프로가 손본 것 같아.]
사진속 남자애는 일본인이었다.
어째서 그걸 단언할 수 있냐면 남자애가 쓰고 있는 모자가
내가 초등학교 운동회때 썼던 모자랑 똑같았기 때문이다.
남자애가 쓴 모자는 사이즈가 너무 컸다.
모자 챙에 얼굴이 가려 입술 이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가 혹시 그녀의 동생이려나.
남자애는 5살 정도로 보였다. 매우 야위어 있었다.
커다란 물총을 꼭 껴안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이 복잡한 일이 아닐지도 몰라.
미인이 얶혀 있으니까 뭔가 특별한 일이라고 억측을 내린건지도 모르지.
그 외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 줘.
더 이상 골치아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349
나는 공주님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공주님이 말해준 마을이나 공원도 절대 가볼 수 없는 가공의 존재.
정말로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그런 곳.
나는 공주님에 대한 건 아무 것도 모르니까.
심지어 이름마져도 모른다.
친구는 확실하다고 결론내렸지만, 그건 확인의 과정일뿐.
아무도 공주님의 진짜 이름은 모른다.
공주님은 내 손이 미치는 곳에 누워 자고 있다.
부드러운 앞머리가 이마에서 흘러내린다.
작은 등 위로 긴 머리카락이 내려앉아 체형을 드러낸다.
나는 공주님에게 접할 수 있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하지만 그녀는 이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하고 있다.
내가 영원히 알 수 없는 먼 이국의 땅에서.
내가 손댈 수 없는 과거의 악몽과 함께.
공주님이 눈을 뜨면 어딘가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자.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자.
공주님이 바란다면 아주 먼곳이라도 상관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정 되있지만.
그렇다 해도 당신의 웃는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공주님의 웃는 얼굴을 기억해 두고 싶다.
350
나는 친구가 보낸 메일에서 눈을 돌려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친구에게 다시 한번 더 메일을 보냈다.
보낼 파일은 없다.
[어이, 공주님은 그렇게 부자인데 왜 나같은 놈이랑 노는 걸까?
이런 행위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여러가지 충격이 겹쳐 넋이 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도 그걸 감안했는지 딱히 쓴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내가 알아낸 정보가 진실일 가능성은 지금 현재 없는 거와 같아.
지금 상태에서 그 여자의 정체는 그림자 같은 거지.
애초에 내가 보기엔 미녀들은 모조리 요정이랑 같아.
거기에 있지만, 손에 닿질 않으니까.
그건 나한테 있어서 존재하지 않는 거랑 같지.
네 입장에서 보면 사정이 조금 다를테지만 말야.]
미안하지만, 나도 너랑 같아.
358
오후 늦게 눈을 떴다.
공주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고양이가 볕을 쬐며 졸듯이
창문 너머에서 흘러들어오는 햇빛에 감싸여 계속해서 잤다.
먼저 눈을 뜬 건 나였다.
침대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샤워를 했다.
머리속이 깨끗하게 정리됐다.
나는 목욕 타올로 젖은 머리를 닦으며 공주님을 깨웠다.
머리속이 정리되니 스스로 뭐라 정의내릴 수 없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평범한 남자들이 그러하듯 나는 그녀를 요구했다.
그녀는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거부하진 않았다.
그녀는 나를 상냥하게 끌어안았다.
이 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공주님이 욕실에 들어간 사이. 나는 그녀를 위해 할 일을 생각했다.
나 밖에 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물론 되도록 호들갑스런 게 아닌 것으로.
359
공주님은 약속이 있다며 잠시 시부야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천천히 식사를 한 뒤 호텔에서 나왔다.
만나기로 약속한 곳은 도쿄역.
나는 그녀가 욕실에서 나온 뒤 이런 제안을 했다.
과거 그녀가 자주 시간을 보냈던 공원, 그곳에 가보자고.
동생과 그녀의 소중한 추억들로 가득한 그 공원에.
그녀는 처음 그 곳에 가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내 진지한 표정을 보더니 고맙다고 말했다.
[사실 몇번이나 혼자 가보려고 했어요. 하지만...왠지 무서워서...]
그녀는 나랑 꼭 함께 가보고 싶다 말했다.
도쿄역에 나오긴 했지만, 약속 장소로 잡기에 이곳은 너무 넓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생각한다.
객관적인 규모만이라면 신주쿠 역이 좀 더 크겠지만,
도쿄역은 이상하게 넓고 커보인다.
머나먼 어딘가와 어딘가를 묶는 거점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머리속에 떠오른 감상적인 생각을 애써 내쫗고
공주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한 노력해보고 싶다.
이런 어설픈 생각은 좋은 결과를 내지 못 한다는 건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좀 더 서둘러야 한다.
남은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360
도카이도 신칸센 플랫폼에서 만나기로 한 게 정답이었다.
공주님이 플랫폼으로 달려오는 걸 바로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우선 커피를 마신 뒤 요코스카행 기차를 타러 가기로 했다.
그 동안 이야기는 별로 나누지 않았다.
공주님은 내 손을 잡고 걸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가는 곳은 추억이 죽은 땅.
과거의 기억속에 얼어붙어 다시는 녹아내리지 않는 장소.
그녀가 잃어버린 모든 것이 그곳에 흩어져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곳에 가고 싶어 했다.
자신이 잃어 버린 무언가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기대를 안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하자. 그녀는 동생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나도 동행하는 것이다.
그녀를 위해서 기차의 창가 자리를 확보했다.
나는 그녀의 정면에 앉았는데 그녀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손을 잡아줘요.]
아무 고민없이 바로 그녀의 옆에 앉았다.
객차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나는 CD 워크맨에 이어폰을 꽂아 왼쪽 부분을 그녀에게 건네줬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딱히 듣지 않아도 돼, 하지만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 거야.]
전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548
요코하마를 지날 쯤 바깥이 어두워졌다.
회사 간판이나 주유소의 오렌지색 불빛이 유리창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과 겹쳐 시야 너머로 사라져 간다.
드문 드문 흘러가는 민가의 불빛은 어째서인지 외롭게 느껴진다.
아마 그녀도 나와 같은 감상을 느끼고 있는 걸까.
내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이 약하게 떨리거나 굳어지기도 했다.
그녀에게 춥지 않냐고 물어보니,
[괜찮아요. 이 정도는.]
그녀는 핸드백에서 핑크색 곰인형을 꺼내 유리창에 기대놓았다.
곰한테도 바깥이 보이도록 머리에 씌워둔 병뚜경 모자를 조절해서.
그 곰인형은 다리가 짧고 몸통은 이상하게 길었다.
밸런스가 안잡힌 몸통은 귀여웠지만 동시에 불안해보이기도 했다.
[이 애는 예전에 이 풍경을 본 적 있어요.
그땐 도쿄로 가는 쪽이었지만요. 이 애의 주인도 이미 없고...]
나는 내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을 그녀의 귀에 마져 끼웠다.
그리고 워크맨의 볼륨을 높였다.
제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추억이라도 음악은 그걸 흘려 보내게 해준다.
효력이 바로 나오지 않을지도라도 음악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너무 시끄러우려나?]
아마 볼륨이 너무 높아 내 목소리를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알아차리곤 괜찮다 말했다.
음악소리가 사라지니 규칙적인 진동 소리가 내 귀를 메웠다.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요코스카로 가는 시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나한테 있어서 엄청 길게 느껴졌다.
그건 그녀의 아픔이 나에게 전염된 탓일까.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549
요소스카 역에 도착한 뒤 나는 자판기에서 생수와 페트병 콜라를 샀다.
콜라 페트병뚜껑을 따서 생수로 씻었다.
그리고 콜라와 생수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가 그걸 산 이유는 단 하나.
곰인형의 새로운 모자를 마련하기 위해서.
공주님의 입가에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돌아왔다.
나는 그녀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동안 택시를 잡았다.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공원은 5분 정도면 갈 수 있다고 했기에
바로 그곳에 들르기로 했다.
택시 운전 기사는 가벼운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역 근처 맛있는 라면집이나 싸게 마실 수 있는 선술집을 가르쳐줬다.
지금 내가 알고 싶었던 정보였다.
불필요한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그녀에게 돌아 오는 길에 거기에 들러보자고 말하거나,
택시 기사의 딱히 재미있지도 않은 농담에 큰소리로 웃었다.
얼마 뒤 공원에 도착했다. 내가 상상하던 공원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애초에 그곳은 공원이 아니라 신사 였다.
신사 주위 공터에 미끄럼틀과 그네, 자그마한 나무 몇그루가 서있었다.
토리이는 다 썩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미끄럼틀이나 그네도 전부 삭아있었다.
[여기야?]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주위가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발밑에 나뒹구는 쓰레기들을 보고 여긴 공원이 아니라
그저 방치된 공터일 뿐이라는 걸 알았다.
가로등 불빛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공기가 맑아서 인지 별과 달이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입에서 새어나온 새하얀 한숨이 달빛에 닿아 흘렀다.
오랜 시간 신주쿠의 어둠을 방황해 와서 일까,
그녀는 이 곳의 짙은 어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짙은 어둠 속에 녹아드는 듯 조용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그건 그녀가 이곳에 올 건 후회하지 않는 것 같아서일까.
아나면 그녀가 녹아든 어둠에 감싸여 있어서일까.
551
이끼로 덮힌 수도 꼭지.
바람이 흩어버려 흔적도 남지 않은 모래사장.
목이 날아간 석상.
둥치부터 껍질이 벗겨져 나간 나무.
그녀는 그것들 전부에 추억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깡통차기를 할 때 거점으로 삼았던 나무.
아이들의 손때를 탔기에 나무 껍질은 늘 흉하게 벗겨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 있어요.
그리고 내년에 다시 싹을 띄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죠.]
그녀는 진심으로 감탄한 듯 말했다.
그 때 그 여름.
그녀의 동생도 술래잡기나 깡통차기를 하며 이 공터를
분주하게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일테지.
우리는 손을 잡은 채 좁은 공터 안을 방황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버린 탓인가,
아이들이 놀만한 기능을 상실한 공터에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쓸만한 거라면 담력 시험 정도일까.
신사 역시 복구하는 것 보단 허물고 다시 짓는 게 빠를 정도로 낡았다.
그 낡은 신사 건물을 배경으로 그녀가 서있다.
그녀는 태양이 그려진 건물 천장 나무판을 보고 있었다.
주홍색으로 칠해진 나무판.
나는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방울을 보았다.
분명 뭔가를 생각해낸 걸까.
그 나무판에 어떤 추억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길쭉한 막대기를 하나 찾아내서 그 나무판을 힘껏 찔렀다.
엄청나게 많은 먼지와 함께 나무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옛날에 발매됐던 캔커피 깡통도 함께 떨어졌다.
그녀는 깡통을 빙 돌려보며 확인하더니 이내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간신히...돌아왔어...]
그녀는 내 손을 잡은 채 파르르 떨었다.
하얀 숨결이 조용히 번져 나갔다.
553
그 캔커피는 공주님이 용돈을 전부 써서 마련한 동생의 생일선물이었다.
헌데 공주님도 조금 마시고 싶어져서 중간에 같이 나눠 마셨다고 했다.
동생은 깡통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천장 구멍에 던져넣었다고 했다.
당시 동생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깡통을 천장에 넣으려 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이제 충분해요.]
그녀가 충분하다면 나도 충분하다. 돌아가자, 토쿄로.
우리는 요코스카 역을 향해 터벅 터벅 걸었다.
도심임에도 겨울 바람은 매우 추웠다.
내 손에 느슨하게 걸린 그녀의 손가락에서만 온도가 느껴졌다.
이 곳을 방문하고 나니, 우리가 함께 보낸 호텔방이 멀게 느껴진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반걸음 뒤에서 나를 따라오는 그녀.
왼손에는 곰인형을 들고 있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갑작스런 겨울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린다.
깡통은 들고 왔으려나. 추워서 콧물이 나온다.
호텔에 돌아가면 최대한 따뜻하게 해서 자자.
그 전에 뭔가 먹어야 될 텐데.
머리를 굴려봐도 별다른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오늘 밤이니까
더욱 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은데
내 머리속은 하릴 없이 표류할 뿐이다.
무슨 짓이든 해서 그녀의 웃는 얼굴을 봐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 또 그녀를 갈구하게 될 것이다.
너무 강렬한 욕구에 그녀를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갈팡지팡.
계속, 계속 갈피를 잡지 못했다.
586
요코스카 역은 이용자가 많은데 비해 비교적 작다.
그래서 해가 지면 근처 상가 건물에 섞여서 역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역 근처 해안가 산책 코스에서 서서
불빛이 반사되어 일렁거리는 바다를 보았다.
추위는 몸속 깊숙히 파고 들어 코트 속에도 온도가 느껴지질 않았다.
그녀의 손이나 얼굴은 바닷바람에 희롱당해 어느샌가 핏기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비비면서 온도를 나눠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니 순식간에 손끝의 감각이 사라진다.
그녀의 뺨을 어루만져도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지 않았다.
[불빛이 예쁘네요.]
그녀는 속삭이 듯 말했다.
[저 빛에 뛰어들면 죽을 수 있을까요.]
[몇분 안에 정신을 잃겠지. 날씨가 날씨니 만큼.]
그녀가 갑자기 뛰어들거나 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감상에 빠져 불현듯 입을 열었다는 느낌이 강했으니까.
더구나 그녀에겐 벌써 몇년에 걸쳐 찬스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한참동안 서 있던 그녀는,
[있잖아요.]
[응?]
[만약 내가 지금 같이 죽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에요?]
나는 웃었다.
[안 죽어. 절대로.
나는 공주님을 도쿄로 데리고 갈 거야.
공주님이랑 호텔에서 따뜻한 커피를 함께 마시고 싶으니까.]
그녀는 그제서야 발을 옮겼다.
곰인형의 작은 팔을 들어 바다쪽을 향해 바이 바이하며 흔들었다.
그 때 나는 택시 기사의 말이 생각났다.
그 아저씨 말대로라면 이 근처에 맛있는 라면집이 있을 것이다.
맛있는지 어떤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뜨거운 국물을 마실 수 있다면.
우리는 택시 기사가 일러준 라면집으로 향했다.
라면은 의외로 상당히 맛있었다.
그녀는 뜨거운 국물을 홀짝거리며 말했다.
[고마워요, 오늘 밤.]
그리고 그녀는 조금 울었다.
587
도쿄에 도착했을 쯤 자정이 지나 있었다.
막차까진 조금 여유가 있었지만 우리는 바로 환승 플랫폼으로 갔다.
너무 추워서 웃길 정도로 몸이 마구 떨렸다.
덜덜 떨리던 몸이 잠시 진정됐다 싶으면 또 떨렸다.
추워서 마비되있던 피부에 감각이 돌아오자
이번에는 너무 예민해져서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엔 어느새 새벽 1시가 넘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프런트에 룸서비스로 커피를 주문하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게 1시 30분.
방안에 들어선 나는 온몸에서 뜨거운 열을 발산하며 침대에 쓰러졌다.
그녀는 한눈에 봐도 알 정도로 상기된 내얼굴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이마에 손을 대고 뭐라 말을 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뒤 돌아온 그녀의 손에 감기약과 해열제가 들려 있었다.
나는 멍하니 호텔 상비약인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약을 먹는 척 하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일단 감기가 들면 그걸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
그러니까 약을 먹어도 의미는 없다.
거기다 나는 약을 정말 싫어한다.
그녀는 나를 말려들 게 한 걸 후회하는 듯 했다.
이렇게 추운 밤에 요코스카의 어둠속으로 나를 몰아넣은 게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야, 가자고 한 건 나야.
네가 아니라 내가 가자고 한 거야.
내가 너를 울린 거라구.
어쩌면 그녀와 재회한 그날
나는 이미 감기에 걸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회사나 전철에서 옮긴 건지도 모른다.
감기가 잠복해 있다 오늘 우연히 발병한 것이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아이를 달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신사가 있던 공터가 너무 추웠기 때문에 내가 감기에 걸렸다고.
오로지 자신의 탓이라고.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허나 내의지와는 관계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계속해서 눈을 뜨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난 잠결에 내 옆에 누군가 있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공주님의 향기.
여자 특유의 부드러운 체온.
공주님이 내손을 잡고 있어.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 거 같아.
이렇게 평온한 어둠에 싸여 죽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588
나는 꿈을 꾸었다.
요코스카 역 근처 산책 코스.
가로등 불빛도 없는 도로를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간 코스를 따라 마치내 그 공터에 들어섰다.
그곳에 있는 건 여름날의 풍경.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저녁 풍경.
아이들의 웃는 소리와 소란스런 발소리.
그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자애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니 내가 아닌 내 뒤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다.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TV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주 맑고 선명했다.
나는 매미가 있는 곳을 찾았다.
눈을 돌리니 어느새 여자애가 코앞에 서있다.
여자애는 손에 중국제 토카레프를 들고 있다.
목에는 핑크색 곰인형과 붉은색 여권을 줄에 꿰어 걸고 있다.
여자애는 내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여자애는 맨발이었다. 그리고 흙투성이였다.
여자애의 손끝이 토카레프 방아쇠에 닿았다.
달칵 마른 쇠소리와 함께 방아쇠가 당겨진다.
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총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축축했다.
공주님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한테 뭔가 말을 걸었다.
나는 그걸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바깥은 아직 어두웠다.
지금은 몇시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공주님이 입으로 물을 머금은 뒤
나한테 먹여 줬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너무 괴로웠다.
감기 때문에, 방금 전에 꾼 꿈 때문에.
아득히 먼 곳에서 무반주 첼로 소나타 소리가 들렸다.
공주님이 나를 위해서 음악을 틀어준 걸까.
음악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체온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나와 공주님 - 6부 (15) | 2012.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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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공주님 - 5부 (19) | 2012.06.01 |
나와 공주님 - 3부 (3) | 2012.05.31 |
나와 공주님 - 2부 (6) | 2012.05.31 |
나와 공주님 - 1부 (5) | 2012.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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