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째 아침,
늦은시간.
공주님이 흔들어깨운탓에 눈을떴다.
마지막 날인데 몸은 전혀.. 내 뜻대로 따라주질않는다.
열은 꽤나 내려간듯한데 졸음이 쏟아져왔다.
그녀가 편의점에서 사준 스프와 빵을 긴 시간을들여 먹고서,
[고마워, 이젠 돌아가봐도돼] 라고 말했다.
즐거웠던 새해의 수일간,
이제 충분하다.
이 이상을 붙잡는것도 구차할뿐이라며 자위했다.
오후도 잠만자며 보낼뿐일테니라고 생각했으니 이렇게 말하는건 당연하다.
그녀는 내 말을들은뒤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단지 내 손에서 빵 포장지를 버리고선
다 마시지못한 스프를 치워주었다.
그뒤 그녀는 옷을벗고 침대로 쑥하고 들어왔다.
싸늘한 그녀의 피부. 시트의 스윽 거리는 소리.
긴 머리가, 귀여운 가슴에 늘어져 펄렁이며 흔들렸다.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공주님이 내 옆에누워 나를 바라보곤
[안 잤으니깐, 잘거에요.]
라고, 그렇게 말했다.
오후부턴 비가내리기시작했다.
호텔의 객실은 아무런 소리없이.
오후의 미술실같은 차가운 정적만이 있었다.
사이드 테이블 위의 시계의 초침만이.
모터가 들어있는 유리막 안에서 빙빙 돌았다.
오후1시를 지났을쯤,
나는 그녀의 寢息(침식)을 들었다.
내 기억은 거기서 끊어져있다.
이 뒤로 남은기억이라곤 얕은잠 속에서 본 꿈.
아시아 어딘가의 거리와.
한장의 플로피디스켓...
619
어두운 방안에서 눈을떴을때.
그녀는 내 곁에 없었다.
벽장속에도,욕실에도.
그녀가 여기에 있었던 흔적조차도 사라져있었다.
화장대 위에 널부러져있던 화장품도
침대 주변에있던 봉투더미도,
죄다 갑작스레 이 방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전원이켜져 대기화면이 된채인 노트북과
사이드테이블에있던 한장의메모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휘청이며 화장실을 들린뒤
냉장고에서 페리에를 꺼내어 벌컥이며 마셨다.
급히 마신탓에 코로 역류하여, 기침이 멈추질않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잠에 들었다.
얕은잠을 잔 뒤,
해가진뒤로 열이 몸속을 다시 부글부글 끓였기에 일어났다.
마치 몸이 불탈정도로 뜨거웠다.
몸이 몹시 나른하고, 철과같이 무거웠다.
마치 관절이 삐걱대는것만 같았다.
힘겹게 침대옆 취침등의 스위치에손을뻗어 어떻게 불을 킬수있었다.
그리고 테이블위에 남겨진 메모에 눈을 돌리자 메모엔 달필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아직 열이 나는걸까요?
조금 걱정이에요.
그러니 곰인형을 두고갈게요.
곰인형이 당신을 지켜줄거에요.
이 곰인형은 내 목숨보다 소중하니까,
그러니까.. 다시 내게 전화해서,
꼭 내게 돌려주세요.
p.s
당신의 소중한 친구분께 전화해두었어요.
시간이늦기전엔 데리러와줄거에요.
그때까진 침대에서 나오면 안돼요.
알았죠? 알겠죠?
- 케이코
620
공주님의 천진난만한 몸짓이나.
얇고색기있는 목소리나.
아름다운 용모에 속아넘어가 중요한점을 잊고있었다.
똑똑한 여자다,공주님은.
그러자 객실의 전화가울리며 프론트에서 손님이 왔다며 알려주었다.
오후10시를 지났을무렵이다.
방으로 친구가 들어왔을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콧물을 늘어뜨리고있었다.
미처 닦아낼 기력도없었다.
[사람 귀찮게스리...]
나는 무슨 상황인지도모르면서도 미안해라며, 몇번이고 사과했다.
친구는 밖으로 나오는걸 싫어한다.
하지만 이곳까지, 멀리떨어진곳까지 찾아와줬다,
나를 위해서.
친구는 차를 갖고있는 폐인이다.
폐차직전의 자가용.
나는 그 조수석에 앉아 계속해서 콧물을 늘어뜨리고있었다.
차가 깜빡이를 켜고서 어딘가의 교차점을 돌고있을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전언철회다. 네 공주님은 장난이아냐,
그러니 너한테 그 공주님은 어울리지않지. 그러니 이젠 손도 대지마.
호텔의 정산도 묘하게 끝마쳐놨고 보냈던 메일은 정중하면서도,
용건 이외엔 토씨하나 안달릴정도로 간결했어.
문장마저 흠잡을곳이 한곳도 없었고말야.
네가아닌 그녀쪽에서 내 핸드폰으로 메일을 보냈다는건,
어떻게 봐도 우리들이 했던말을 알아챘다는말도 된다 이거지.
...단지 위험한 일을하는,얼굴만 반반한 여자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야...
더 깊이 관여하다간 깔끔한 결말을 기대하긴 어려울것같다.
이제 관둬, 친구니까 하는말이다 친구를 믿어.]
친구는 내가 공주님을 감당할수없다고 말했다.
그걸듣고 나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대로 흐느껴울었다.
정말 미안하다.
친구야...
네 말을 들을순없어.
난 그녀를 사랑하고있어,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말야 ...
그리고 나는 차가 집으로 도착하기전에 토했다.
조수석의 시트에 속에 들어있던 전부를 게워내듯 토했음에도,
친구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친구는 묵묵히 창을 열고선,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내 손에 쥐어진 분홍색 곰인형
인형에 코를대자 역시나 향기가 난다.
넌 이 곰인형이 나를 지켜준다고했지만
그게 아냐,
내가 이 곰인형이야.
네게 돌아가고싶어서,
가슴이 터질것만같은데,
나는 언제고, 1초에도 수번을 너만 생각하고있는데.
네 가슴이야말로 내가 있을장소인데..
674
7일째 아침.
몸이 무겁고 괴롭다.
내방 침대에서 기어나온게 기적적이었다.
또 언제나처럼 하얀셔츠에 손을넣고선
넥타이를 졸라맬뿐인 매일의 시작.
삑삑거리는 체온계를 보니 간당간당39도를 보이고있었다.
최악의 스타트다.
집에서 처량하게끔 열내봤자니
아무일없다는듯 현관을열고,
늘 보아온 상점가를 빠져나와 역을 향한다.
내 행로의 반대편에선 여고생들이 재잘대며 다가온다.
공주님과 몇살 차이가나지않는 여자애들이다.
아주조금, 인생의 나사가 어긋났을뿐인데,
저 여고생들처럼은 웃을수없게된 공주님.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잔돈을 자판기에 쑤셔넣고선 적당한 버튼을 주먹으로 쳤다.
나온건 한마디로 어느회사의 어떤상품을 고르더라도 큰 차이가없는맛의 캔커피.
그런 캔커피와는 달리 나는 우연히,
평범과는 먼, 스페셜한 여자와 만났다.
이름은 리카, 케이코이기도하며, 공주님이다.
동시에, 그 무엇과도 다른
내가 알지못하는 여성.
이따금 선로가 끼어있는 건널목엔 진입차단로가 내려오고,
바퀴가 달린 철로된 큰 상자도 몇개고 지나간다.
도심으로 향하는 인간전용 콘테이너.
그 매일의 여로들을 합치면 분명히 달보다 멀겠지.
그리고 나는 그 여로의 도중에서 공주님을 찾아냈다.
공주님은 선로의 옆을 도보로 나아가는 난민이다.
빛바랜 봉제인형만이 유일한 동반자인...
작은 돌에 발이걸린것만으로도 끝날것만같은 위험한 여행.
그리고 그여행의 동반자는 지금 내 검은가죽의 사각 가방속에있고,
본 주인의 따뜻한 손으로 돌아가는걸 절망(切望)하고있다.
이 동반자는 자신이 있을곳은 공주님의 뒤좁은 가방속이라고 확신하고있다.
어젯밤,
홀연히 사라져 없어져버린 공주님.
왜 내 손에 곰인형을 남긴걸까?
막연한 생각이 떠오르다 사라지지만,
지금, 내 열에 녹아버리고만 머리는 그런 생각조차 붙잡질 못한다.
그러던중 전차가 역에 스윽하고 들어온다,
나는 여고생들과 함께 그 전차안으로 넣어진다.
경량 스테인레스와 폴리카보네이트의 무기질로된 통.
그 안에서 나는 자신인척을하며 호흡하는 다른 무언가다.
넥타이 모드에 딱 들어맞는게 되는 자신을, 나는 자랑스레 여기지만.
친구의 싸늘한 시선을 당당히 받아들이질 못한다.
어쩌면, 애처롭다 생각되는건 내쪽일지도 모른다.
변화를 싫어한다며 묵묵히 살아온 나.
그때, 내버려졌을떄 ,
나는 곰인형을 쥔채로 흐느끼는것밖엔 할수없었다.
그 여름의 공주님처럼.
그 겨울에 유일히 그녀를 지탱해줬던 남동생에게,
버림받은듯 외톨이가된 공주님처럼.
675
출근해서 동료와 손뼉을 치고서
새해복 많이받으라며 덕담을 주고받고
책상에앉아 PC를 켠다.
단 1주일전에도, 나는 이곳에있었다.
하지만 그 날을 아드막히 느끼고있다.
분명 공주님으로부터 영업메일이 왔던 날이다.
그날은,
연말인데도 귀찮은 일이 한가지 있었고,
말일부터 날짜가 변경되어 신년이 될때까지
동료들과 끈덕지게 붙어있던 날이다.
그리고 그 흔적이 모니터에 나타난다.
근무중에 벌인 딴짓이 아니게 보일정도로 멋지게끔.
누구라도 일에있어서의 정밀한 톱니바퀴가되는건어렵다.
그 곤란함의 이력이다 이건.
나는 손끝으로 업데이트된 메일들을 찾는다.
그러고선 등뒤에 서있는 키큰남자와 소리없이 웃음을 주고받았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우리들의 노력은 보답받으며, 만사가 순조롭다.
그런고로 나는 돌아가기로했다.
뭐가 어떻든, 곧바로 전차에오른뒤 집에도착해 따뜻한 내방의 침대위에서 자려했다.
신뢰할수있는 동료의 메일주소에, 조퇴의 변경을 적은 짧은 메일을 송신했을쯤이려나.
휴대폰의 진동과함꼐 메일을 수신했다.
> 곰인형 돌려주세요.
> 전화하라는 메모 남겨뒀잖아요.
공주님에게서였다.
가슴이 뜨뜻미지근하게 한번 두근거리는 뜀박질을 보였다.
이 뜀박질은 소름을 동반했고, 소름은 내 사지 저끝까지 내달렸다.
계속해서 또 한통.
> 현재 데이트대행 미소녀 무료 캠페인중이에요.
> 1분이내에 답장해준 당신에겐 미소녀와함께 꼭~붙어잘수있는 특전을 드려요.
> 보고싶어요.
메일을 수신한지 30초쯤을 지난 초침이 기계음을 낼때쯤 공주님께 답장을보냈다.
[만나고싶어.]
라고만 보낸뒤 장소를 추신했다.
미소녀라는 미묘한 표기에대해선 함구한채로.
플로피디스크에 대한것도있으니.
676
집근처 전철역의 카페,
공주님은 개찰구를 통과하는탑승객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런 공주님을보고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나.
그녀는 서둘리 내게 달려와선 내 이마에 손을 얹곤 얼굴을 찌푸렸다.
[열이있네요. 전혀 낫질않았어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슈퍼에 들렸다 가겠다고 말하고선 택시를 붙잡아 나를 밀어넣었다.
감기도 이렇게까지 심하면 걷는것조차도 괴롭다.
그녀는 그날,
디스켓에 대한말은 일절 하지않았다.
나또한 거북함을 느꼈지만 역시.. 말할수없었다.
내가 말하면, 그녀의 만져선 안될 무언가가 내 탓에 흘러넘쳐 버릴듯했기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내 탓으로 망가져버리고 흘러넘쳐 결국은 없어질테니까...
그렇지만 그 무언가가 그녀에게있어선 터무니없이 말하기어렵다는것이란건 어렷품이 알아차렸다.
그녀 스스로, 옛날이야기의 최초의 시작을 어떻게 다뤄야할지에대한게
무척이나 어렵고 힘겨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보는 나는 어떻게된건지 죄의식은 별달리 느껴지지않았다.
혹시, 나는 그녀의 입에서 일의 진상을, 자초지종을
듣고싶어했던거였을지도 모른다.
도쿄에서 보냈던 밤,
바닥을 뒹구며 만진 매끈한 그녀의 등이보인다.
그 등을본 나는 이 일에서 서둘러 도망치듯, 그녀의 가녀린 팔을 잡았다.
그날밤부터다,
나는 사실 알고있었다.
어렷품이 헤아리고있었다.
나와 공주님을 이렇게 까지 고뇌하게만드는,
그 무엇은 내게있어서 너무 무겁기만 할뿐이라는걸.
그리고 그녀에게있어서도...
하지만 나는 스스로 그무엇인가를 부트해버리고말았다.
어디선가 딱하는 소리가난뒤,
보이지않는 서보모터가 조용히 작동을 시작해, 긴밤을 감아만간다.
당연하다싶이, 이 밤을 멈추어줄 정지스위치따위는 없다.
기계는 밤이 감아져가며 없어져버릴때까지, 작동을 멈추지않는다.
그때, 그 밤에 나는 어디서 무얼하고있을까?
아마도..적어도 공주님은 내 곁에는 없을거란 생각이든다.
머리가 아팠다.
열은 심하게 올라만간다.
택시가 본적있는 큰 쇼핑몰의 입구에서 조금 선회한뒤,
브레이크를 밟아 떨고선 뚝하고 멈춘다.
공주님은 날위해 레몬과 벌꿀,
그리고 무슨 잡화들을 봉투에 담고서 돌아왔다.
그런 공주님의 한손에는 쇼트케이크의 작은상자가 있었다.
[이전엔 빈손이었으니깐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가방에서 곰인형을 꺼내들어
양손으로 잡은뒤 곰의 머리를 꾸벅하고 숙인뒤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녀의 배려에는, 제대로 감사하지않아선 안된다.
그녀는 곰인형의 머리를보곤 웃었다.
새로운모자, 펩시의 뚜껑이다.
이 곰인형은 제대로된 모자 수집가가 되어가고있다.
751
택시가 현관앞에서 차체를 바짝 대고서 멈추자,
엄마가 발을 동동구르며 기다리고있던것처럼 현관에서 나오셨다.
마치 내 귀가를 전부 꿰차고있던것만같다.
어떻게 안걸까?
아마 이 상황에대해 어리둥절한듯한 얼굴을 하고있었겠지.
그런 날 보고서 공주님은
[어머님께 전화로 연락해뒀어요.]라고 그녀는 말했고
[또 갑작스레 방문할수는 없었으니깐요.]
[서로 마찬가지잖아요.] 라고, 그녀는 무표정으로 담담히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미소가 가시면 굉장히 차갑게보인다.
그런 얼굴로, 그녀는 내가 본 플로피디스켓에대해서 넌지시 내비쳤다.
[당신의 수첩과 휴대폰데이터는 전부 봤어요.]
중요한것들은 전부 내 메모리로 옮겨두었구요.]
진짠가요?
그러면, 내 즐겨찾기에 등록된 팬티도촬사이트도 들켰단거고.
라는건, 사실 교복미니스커트에 환장한다는것도 들켰단걸텐데.
아마 술자리에서 알아냈던,
도촬사이트 URL을 기뻐하며 메모장에 직접 1페이지에 큼지막하게 썼을텐데...
이 공주님이라면 URL을 전부다 한번쯤은 열어봤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친구야,
미안하다.
네 실명까지 알려져버렸어.
나는 꾸지람들은 아이처럼, 군소리없이 가만히 있을수밖에없었다.
그런 나는 곰인형을 손에 쥔채이기에...
한층더 얼간이처럼보였을테지..
그런꼴인 나를본 엄마의 잔소리가 내 발목을 묶어붙들기전에,
2층에있는 내 방으로 내달렸다.
공주님도 그걸 알고서, 엄마의 주의를 제게모은뒤, 어느샌가 둘은 주방으로 사라져있었다.
방으로 도착해 셔츠를 벗어던지고,
넥타이를 풀어헤친뒤 유니클로의 스웨터로 갈아입는다.
그뒤 커튼을 열어젖히자,
잿빛덩어리인 구름들에 투과된 빛이 방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채광하나로도 환하기그지없는 방이 된다.
맑게 개인날의 햇살은 방에 어두운그림자를 만든다.
그렇기에 오히려 구름낀날에 방이 밝다.
골고루퍼진 이 빛 속의 방은 너무나도 밋밋해보인다.
이 방은아무런 볼거리도없다.
개성의 한 조각도 찾아볼수없는,
일에 치이는 독신남의 방이다.
쓰잘데기없이 산처럼쌓여있는 음악CD와
잔뜩있는 잡지에대해 나는.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말하기보단 충동적인 잠시간의 취미였다. 라고 해야한다.
오히려 이것들은 장르와는 맞지않게 물건 자체에서 오타쿠냄새가 풀풀 풍기는듯이 보인다.
그렇게 바라보다 침대에 기어들어가자 나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 빠져들며 밑층에서 공주님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얇고 높은데도, 조금도 시끄럽지않은,
자장가로는 최적의 음역이다.
그 자장가에는 확실히, 나를 감싸안고선 안정되게해주는 마법과도같은 힘이있었다.
수면까지의 도입을 재촉하는,
볕의 냄새와도 닮은듯한... 안심감이 있었다.
752
땀을 흘리고있었다.
저녁밥을 가져와준 그녀의 기척에 눈을떴을때,
이불속은 완전히 병실에 누운 병자의 그것과도같은 냄새만이 한가득 차있었다.
그녀는 내 가슴에 서늘하며 차가운 손끝을 대곤
[가엽네요.] 라고 말했다.
[미안해요. 오늘밤은 쭉, 같이있어줄게요] 라고말했다.
미안해요 라고 사과하는건,
요코스가의 밤에대한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들었을때, 나는 그녀가 요코스가에 방문했던걸
역시 틀림없이 후회하지않고서, 만족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니 여기에 있어요.]
[당신의 곁에있어요.]
그런 의미이려나? 하고 생각했다.
본의를 파악하지못해, 의아스레여겼던 공주님을 바라보자, 자연스레 눈이맞았다.
부드러운데도 왠지모르게 화내는듯한 느낌도 든다.
컬러 콘텍트렌즈도 아닐텐데 희미하게 갈색빛이 섞인 큰 눈동자.
이 눈동자는... 내가 모르는 풍경을 잔뜩 비춰왔겠지.
시부야 변두리의 드럼통과 모닥불에 타오르는, 여러 욕망의광채.
홍채에 새겨진 잔혹한풍경들에게서 눈을 닫아 도망치는것조차도 불가능했던 공주님...
그때의 공주님은 그 전부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다고 생각한다.
흐느낌과 낙담만으로 몇개의 밤을 보내왔던걸까.
지금도 돌아갈 집마저없는 공주님.
공주님은 언제고,
[집에는 돌아가고싶지않아요.] 라고 말했다.
그걸 실행에 옮기기위해선 어리기만한 여자아이가 실행할 선택지는 많지않다.
기껏해야 한손에 꼽을수있을정도일테지.
공주님의 눈동자속의 나른히 보이는 풍경.
네온사인과, 그 불빛에 가라앉은 시부야의 거리.
그걸보곤 잘 생각해봐. 라고 나는 내게 말했다.
분명히 나와 함께 잠들었던 그녀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있었던 나는 다른 누구와 다를게없다.
나만이 특별한게 아니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서 기분이 풀릴때까지,
그녀를 시부야의 밤속에 붙들어 매려하고있었다.
다른 누구와 다를바없이.
753
플라스틱의 하얀 스푼을쥔 공주님이
더욱 어린애같이만보여서
공주님이 그걸 손에쥐었을때, 나는
[스스로 먹을게.]라고 말했다.
쑥스러웠다.
그러나 일어나는건 귀찮았으며, 솔직히말해 식욕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공주님이 기껏 만들어준 죽이라면 먹어야했다.
무리해서라도 남김없이 먹어야한다.
어느샌가 난로에 불이 들어와있어, 방은 따뜻했다.
그녀는 내곁에서 내가죽을 먹는동안
어떻게 만들었는지와 조금 궁리해서 만들었다던가.
엄마와 여러 이야기를 했었다던가와같은 두서없는 이야길 했다.
그 사이, 흥미가 방에 쌓여있는 CD에 향해져선
그 뭉텅이속의한장을 꺼내들곤
[한장, 빌려도 괜찮을까요?]라고 내게 물었다.
말을 입밖으로 내려하면 기침이 나온다.
거기에 몸이 무거웠다.
그뒤론 죽이 맛있어서, 먹고있는 사이에 식욕이 생겼기에
죽에만 정신이 팔렸던 탓도있다.
나는 샐러드까지 깨끗하게 비워냈다.
[잘먹었습니다.] 라며 합장하자 그녀는 기뻐해주었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감자
입술에서 그녀의 손끝을 느꼈다.
보기좋게끔 예쁜 네일의 끝부분이, 내 입술 위를 춤추듯스친다.
그녀는 무슨노래인가를 노래하고있었다.
들리지 않을정도로 작은 소리로.
그리고 그렇게 노래하며 내게 이렇게 물었다.
[어디까지 알았나요?]
디스켓에대해서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말도 않았다.
실제로 이해된 거라곤 하나도없었기에.
그러니 대답할수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부탁이에요... 부탁이니깐... 당신에게 보이지않는 날 쫓지말아요.
거기서 멈춰주세요. 이제 곧 끝나니까... 이제 조금이면 다 끝나니깐...]
그녀는 그렇게말하고선 내 배에 머리를 뭍었다.
이제 곧 모든게 끝난다. 고 말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나는 눈을 감은채로, 아무 답도 하지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역시 무겁구나...
[봐! 내 말대로잖아! 이 멍청아!] 라고 친구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 밤은 얼마나 감긴걸까.
우리에겐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걸까.
아무런 대답도 않은채로, 나는 잠 속으로 도망쳤다.
그녀의 목소리.
그건 얇고 자장가에 딱맞는 부드러움이 있다.
[여기에 있어요.]
[당신의 곁에있어요.]
7
8일 아침.
어렸을적부터 쭉 다니고있는,
주치의가있는 병원에 갔다.
그녀는 대합실의 납작한 긴 의자에 앉아있다.
갈색에 합성피혁의 의자는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고,
그 구멍들은 껌테이프로 보강되어있다.
몇번이고 보아온 이 갈색의 의자에 앉아있으면... 정말이지 우울해진다.
아마 병원의 음울한 이미지가 박혀든거겠지.
주치의는 고령에 새하얀 콧수염을 자랑하시는, 애들에게 한없이 상냥하신 할아버지다.
병원에서 내려주는 처방이라곤 '안정' 이것뿐이며 이게 처방전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기위해서 이곳에 온다. 안정을 위해.
이 병원에서 2종류 이상의 약을 처방받았던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할아버지가 마음에 든다.
[먹어도 좋고, 먹지않아도 좋단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있는듯했다.
문진과 촉진이 끝나, 셔츠에 손을 넣고있자 할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저 아가씨랑 함께 있도록 하거라. 곁에서 간병받도록 하는게야.」
내가 그 말을듣곤 웃으면서,
[왜죠?] 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시원스레 이렇게 말했다.
[젊은 남자의 감기에 딱맞는 특효약은, 젊은 아가씨이지. 껄껄껄]
놀리듯이 내게 말하셨는데 그 대답이 어지간히도 이상한탓인지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8
대합실에 돌아가자 그녀의 등이 보였다.
의자에 오도카니 앉아서 핸드백을 정리하고있었다.
그러다 내 기척을 느끼곤 뒤돌아보는 그녀.
[어서와요, 다행이네요, 별탈 없어서.]
그렇게 말한 그녀의 손에는 한장의 플로피디스켓이 쥐어져있었다.
플라스틱의 투명케이스와 함께.
그녀는 디스켓을 보였음에도불구하고 별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내 눈앞에서 디스켓의 검은 부분을 보여왔다.
머리 근처를 빙글빙글 집게손가락으로 돌리는 행동.
그 손끝엔, 그녀의 얇은 머리가 감겨져있었다.
한올만이.
그녀는 디스켓의 자기디스크를 가드하는 금속셔터를 열고
지금 갓 뽑아낸 머리카락을 셔터의 슬릿에 통과시키고선,
빙글하고 디스크본체에 돌돌말아 라이터를 꺼낸뒤
디스크를 살짝 굽는다.
나는 웃었다.
이런거였나...
조심성이많은 공주님이다.
디스켓은 봉인되어있었다.
그 호텔의 어둠속에선 전혀는 아니지만 보이진 않았다.
아니, 다른 어떤 장소에서도 눈치채질못했다.
[딱히 당신을 의심하는건아니에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디스켓은 곧바로 오는게아닌 수 명의 손을 건너오니 디스켓의 봉인은 무르다.와
신중히 다루지않으면 곧바로 봉인이 풀려버린다며.
부팅따윌 하려한다거나 누군가가 내용물을 열람하려할경우 곧바로알수있다고한다.
파일의 제작자는 동료조차 신용하지않는단건가.
그녀는 신중하게 디스켓을 투명케이스에 담았다.
그뒤[오늘은 댁에서 묵도록할게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어떻게해서든 묻고싶었다.
묻지않아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적기다, 그녀가 눈앞에있으니까.
눈앞에 있으면 안심감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없는 밤은 어떻지?
나는 침대 한가운데서 눈을 감지도 못하고서 밤을 보내게 된다.
분명히 그렇게된다. 그런건 절대적으로 사양한다.
10
「저기, 케이코. 그 디스크가 널 위험에 빠뜨리거나...그러진않아?」
그녀는 내가 갑작스레 움직였기에, 놀라서 의자 위에서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났다.
나와 그녀의 거리가 벌어진다.
그 탓에 서로 맞잡은 손이 현수교처럼 팽팽하게, 늘어졌다.
몇초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고개저었다.
그뒤, [절대,그런일은 없어요.]라고 작게 말했다.
조금 안심되었다.
그녀가 나를 걱정하고 순간적으로 거짓을 말한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한다면 이 이상 묻는다 할지라고 부질없다.
하지만 나는 안심하기로했다. 그렇게 믿기로했다.
[이제 말하고싶지 않아요.]
그렇지않아, 그런게아냐라며 난 머리를 흔들었다.
「친구의, 그러니까 OO의 메일주소를 어떻게 알아낸거야?」
그녀는 [미안해요 멋대로 봐버려서...] 라고 말하곤 이렇게 덧붙였다.
이틀이나 엊그제, 좀더 전이려나?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진이 PC에 비춘채로 되어선, 새까맣게되었길래 그걸 닫자
브라우저에 메일수신함이 표시된채가 되었다고한다.
새벽.
나는 꾸벅꾸벅 졸고있었다고한다.
그녀는PC에 박힌채인 디스켓에는 손대지않았다고한다.
아마 내가 슬쩍 돌려준다고 생각했다고한다.
그 밤부터 그건 알고있었다고한다.
그걸듣고 자신의 별 같잖은 첩보활동이 한심해져왔다.
[여러가질 물어서 미안해.] 라고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커피라도 마시고가자.
회사에 연락도 넣지않으면 안되겠는걸.. 하고 말하자
그녀는 볼일이있다며 시부야에돌아갔다.
그녀는 대체 어디서 짐을 가져오는것일까?
어디서 옷을 갈아입는것일까?
나는 알지못한다.
하지만 확실히 알고있는건,
그녀가 예쁘게 치장하고서 돌아온다는것뿐이다.
매일 돌아가는 시부야의 거리엔 뭐가있는걸까?
그런 의문이 언제고 떠오르곤 사라진다.
별달리 중요하지않다는건 알고있다.
질문하는건 금지되어있다. 뭐어...이대로도 좋겠지.
여자가 말하는건 언제든지 옳다.
옳지않을땐 입을 열지않게되니까.
병원주변엔 아직까지도 밭들이 듬성듬성 남아있다.
누군가의 애마였다가 지금은 버려져 처량한 처지가 된 붉은 밴.
저녀석이 병원의 정면에있는 밭의 모퉁이에 자리잡고있다.
왜 저녀석이 이런곳에 폐기된채로 있는건지 이유는 모른다.
유리는 전부 제거한채라 지금은 잡초의 모판이되어있기에
혹시나 봄에는 별난 오브제처럼 보일지도모른다.
민들레와 제비꽃, 그 외 이름모를 작은꽃들.
공주님의 기억도 언젠가 이리될 때가 오려나?
너무나 빛을바랜나머지 앳되듯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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